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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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기사] 재생 전력 수요는 늘어나는데…커지는 기업계 우려
작성일 : 2025-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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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재생 전력 수요는 늘어나는데…커지는 기업계 우려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76)
전 지구적으로 전력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 국제에너지기구) 집계에 따르면, 전 세계 전력 소비량은 1990년 1만 901TWh에서 2022년 2만 7,231TWh로 2.5배가 됐습니다. 30여년의 세월, 연간 소비량이 전년 대비 감소한 경우는 단 두 차례 뿐이었습니다. 바로 2009년과 2020년, 전 세계가 휘청였던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의 순간이었죠.에너지 소비 자체가 늘어난 결과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는 꾸준히 진행중인 전기화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점차 '전기 이외의 에너지'를 이용하던 도구들이 전기를 에너지원으로 하는 것들로 바뀌게 된 겁니다. 우리 인류는 이 과정에서 이 전기를 보다 더 청정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재생에너지의 확대는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고요.
2022년 기준, 전 세계에서 생산한 전력의 25.8%는 재생에너지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인 7.1%를 훌쩍 넘어서는 수치입니다. 일부 선진국들이 세계 평균을 끌어올린 것일까. 꼭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브라질의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은 무려 87.5%에 달했습니다. 베트남(49.1%)과 인도네시아(18.2%) 같이, 우리나라가 건너가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 사업을 추진 중인 ASEAN 국가마저도 우리보다 그 비중이 훨씬 높습니다. 국내에서 과거 '미세먼지 원흉'을 넘어, 최근엔 '기후변화 원흉'으로 지목되곤 하던 중국은 24.2%, 인도는 22%의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기록하며 에너지전환의 속도를 높이는 중입니다. 트럼프 1기를 지난 시점의 미국도 21.1%, 세계 최대 규모의 원전 발전비중을 자랑하는 프랑스도 26.1%, 후쿠시마 참사로 갑작스레 대형 원자력발전소들의 가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일본도 21.5%… 선진국, 개도국 할 것 없이, 북반구와 남반구 가릴 것 없이, 위도에 상관없이, 한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들은 이미 에너지전환이 궤도에 오른 상태인 겁니다.
이는 그저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지구를 지키자는 '순수한 의도'에 따른 결과가 아닙니다. 에너지원의 대량 생산국이 몇 없었던 화석연료 체제에서 벗어나 자국내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가성비를 무기로 경쟁이 이뤄지던 비즈니스 시장에서 가격이 아닌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따지는 '탄성비'라는 새로운 룰을 통해 다시금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모두가 저마다의 이유들로 이 에너지전환을 '기회'로 삼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100여년 '전통의 명가'였던 레거시 자동차 제조사들을 상대로 상대적으로 '젊은 기업'인 한국 자동차 제조사가 전기차라는 완전히 새로운 판에서 전에 없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에너지전환 정책은 그 국가에 기반한 산업계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습니다. 제아무리 기업이 탄성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그 국가의 전기가 '화석연료 범벅'이라면, 그래서 자체적으로라도 재생에너지를 직접 생산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조달해보려 하는데 온갖 낡은 규제와 제도가 발목을 잡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기업재생에너지재단은 국내 RE100 수요기업 27개사와 재생에너지 공급기업 16곳 등 총 43개 기업을 대상으로 그간의 재생에너지 시장 환경과 향후 전망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RE100 수요기업의 경우, 제조업과 건설업, 서비스업, 금융업 등 다양한 업종들로 구성됐습니다. 우선, 지난 한 해 동안 기업의 재생에너지 조달 또는 판매 상황이 전년(2023년) 대비 어땠는지를 묻는 질문에, 전체 28%가 '악화됐다'고 답했습니다. 전년보다 나아졌다는 답변은 18%에 그쳤고, 그 중 '매우 호전됐다'는 응답은 2% 뿐이었죠.
그나마 재생에너지 공급기업의 경우, '다소 호전' 응답이 31%, '매우 호전' 6%로 상대적으로 상황이 나아졌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수요기업의 경우 '매우 악화' 7%, '다소 악화' 22%로 상황에 좋지 않았고, 심지어 '매우 호전' 응답은 전무했습니다. 계속된 재생에너지 발(發) 전기에 대한 수요 증가를 공급이 따라오지 못 한 결과입니다. 재단 측은 “공급물량의 부족 및 PPA((Power Purchase Agreement, 전력구매계약) 계약 가격 상승으로 수요기업과 공급기업 간 상반된 응답이 나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 기업이 지난해 가장 적극적으로 구매 또는 판매한 재생 발전원은 무엇이었을까. 현재까지 '한국의 재생에너지 = 태양광'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태양광의 비중은 74%로 압도적이었습니다. 기업재생에너지재단은 “태양광이 시장을 주도하는 경향은 지속될 전망”이라면서도 “공급기업들이 풍력 시장을 새로이 개척하는 모습 또한 엿볼 수 있는 결과”로, 향후 풍력발전의 공급이 늘어날 걸로전망될 걸로 내다봤습니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재생 전력을 사고, 팔았을까. 이전까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녹색프리미엄'이었습니다. 수요 기업의 29%가 녹색프리미엄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조달했다고 답했습니다. 일반적인 전력망을 통해 사용하는 전기의 '출신 성분'을 구분 짓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전국 각지의 다양한 발전소에서 비롯된 전기가 여러 송배전망과 변전소를 거쳐 수요자에게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일반 전기요금에 추가금을 내고서 '나는 청정 전력을 이용했다'고 하는 것이 이 제도입니다. 청정 전력 사용에 대한 명확한 확인이 어렵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이를 인증받는 데엔 어려움이 크죠.
이와 더불어, 지난해엔 PPA를 통한 재생전력의 조달 또한 29%에 달했습니다. 재생에너지로 전력을 생산하는 공급 기업과 직접 계약을 맺는 것이죠. 재생에너지의 사용을 가장 확실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전까진 PPA라는 개념이 차차 정립되는 상황이었다면, 어느덧 주요 전력 조달 수단으로 자리잡은 겁니다. 재단은 “수요기업들은 공급물량 부족에 대한 단기적 대응으로 녹색프리미엄을 선택했고, 장기적 전략으로 PPA 계약을 체결했다”며 여전히 녹색프리미엄의 비중이 높은 만큼 “PPA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직접투자' 또한 수요기업의 재생에너지 조달 방법에서 10%를 차지했습니다. '목마른 이가 직접 우물을 파는 방법'으로, 이 또한 공급 부족의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럼 기업들이 답한 2024년 평균 PPA 계약 가격은 얼마였을까요. 전체 기업의 59%가 170~180원/kWh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는 수요와 공급이 만난 최적 지점으로, 지난해 산업용 전기요금은 kWh당 기존 160원대에서 170~180원으로 인상된 바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대용량 고객인 산업용(을) 요금은 kWh당 165.8원에서 182.7원으로 16.9원이나 인상됐고, 중소기업 등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은 기업들이 이용하는 산업용(갑) 요금은 164.8kWh에서 173.3kWh로 8.5원 인상됐죠. 장기적으로 전기요금의 인상이 예상되는 만큼, 일정 기간 고정 가격이 보장되는 PPA에 대한 수요 기업의 니즈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RE100으로 인한 재생 전력 수요 기업들과 재생 전력 공급 기업이 바라보는 향후 전망은 어떨까. 입장에 따라 전망은 서로 달랐습니다. 수요 기업의 경우, 앞으로도 자사의 재생에너지 조달이 여전히 어려울 걸로 내다봤습니다. 올해가 2024년보다 호전될 거라는 응답은 29%(다소 호전 25%, 매우 호전 4%)에 그쳤습니다. 지난해와 비슷할 거란 응답이 36%로 가장 많았고, 더 나빠질 거란 응답도 30%를 넘었습니다. 반면, 당분간 공급 부족 상황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공급 기업의 경우 67%가 호전될 거라 내다봤습니다.
수요 기업은 2026년에도 2025년보다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보다 걱정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년과 비슷할 것이라는 응답이 무려 44%로 다수를 차지했고, '매우 호전될 것'이라는 응답은 아예 없을 정도였습니다. 반면 공급 기업의 경우엔 '매우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 전무했고, 나아질 거란 응답이 69%(다소 호전 50%, 매우 호전 19%)에 달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앞으로도 수요 측도, 공급 측도 모두 태양광 중심의 재생에너지 시장을 내다보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2025년 PPA 계약 또는 REC 거래시 가장 선호하는 발전원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수요 기업의 93%, 공급 기업의 70%가 태양광을 꼽은 겁니다. 공급 측에선 30%가 풍력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아직 실질적인 '준공 실적'이 부족한 만큼 수요 기업의 태양광 선호는 당분간 이어질 걸로 보입니다. 또,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비연소 재생에너지'와 달리, 결국 연소를 할 수밖에 없는 바이오에너지의 경우, 현행법상 재생에너지로 분류되고 있음에도 수요 기업과 공급 기업 그 누구도 '최선호 발전원'으로 꼽지 않는 결과가 나왔습니다.2026년에 사거나 판매 할 최선호 발전원을 묻는 질문에서도 비슷한 양상의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기업재생에너지재단은 “태양광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존재하고 있어 공급기업도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동이 트면서 비로소 발전을 시작하는 태양광 발전의 간헐성이 전체 전력 시스템의 관점에선 '불안 요소'일 수 있으나, 직원들의 출근부터 퇴근까지의 근무시간 동안 전력 수요가 큰 기업의 경우, 입장과 판단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는 만큼, 수요 기업의 태양광 선호도는 탄탄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재생 전력을 거래하는 방법은 어떻게 달라질까. 시장이 성숙해짐에 따라 점차 녹색프리미엄은 줄고, PPA는 늘어나는 결과를 보일 걸로 예상됐습니다. 수요 기업의 절반 이상이 2025~2026년, PPA를 통해 재생에너지를 구매할 것이라 답했습니다. 녹색프리미엄을 통해 조달하겠다는 응답은 계속해서 29%에 머물렀고, 또 다른 간접적인 거래 방식인 REC(Renewable Energy Certificate,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현물거래는 수요기업이 고려하는 구매 방식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재생 전력 공급 기업 역시 72%가 PPA를 꼽았고, 17%가 '직접투자'를 재생 전력의 판매 수단으로 선택했습니다. REC 현물거래의 비중은 2024년의 28%에서 11%로 크게 줄었고요.
재생 전력의 수요 기업과 공급 기업은 앞으로의 가격을 어떻게 내다봤을까. 수요 기업은 점차 가격의 인하를, 공급 기업은 가격의 인상을 예상했습니다. 이는 각자의 입장차에 따른 당연한 차이로, 정부뿐 아니라 기업, 그리고 전력시장 관계자들 모두는 이러한 양측의 입장과 전망을 고려한 장기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재단 측의 설명입니다.
수요 기업의 경우, 2025년 내부승인이 가능할 가격으로 38%가 170~180원/kWh를 꼽았고, 160~170원/kWh가 28%로 뒤를 이었습니다. 2026년엔 160~170원/kWh 30%, 170~180원/kWh 27%로 가격대가 소폭 내려왔습니다. 공급 기업의 경우, 2025년 170~180원/kWh, 2026년엔 180~190원/kWh 53%로 점진적인 인상을 예측한 걸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보고하고, 이를 최종 확정해 공고했습니다. 오는 2038년까지 우리나라의 전력수급을 다루는 계획으로, 이 시점은 2050년 탄소중립 달성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죠. “10차 전기본 대비 무탄소 발전원의 비중을 높였다”는 것이 정부의 자평이었습니다. 2023년 기준 60.9%에 달하는 화석연료의 발전비중을 2038년엔 29.3%로 낮추고, 8.4%에 그치는 재생에너지의 발전비중을 29.2%까지 높인다는 이유에섭니다.
정부의 평가와는 달리 외부의 평가는 차갑습니다. '재생에너지 29.2%'라는 숫자는 현재의 전 세계 평균 비중에 가까운데, 선진국이 이를 2038년 목표로 내세울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죠. 당장 글로벌 이니셔티브인 RE100 측은 한국 정부에 11차 전기본의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목표를 상향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내세운 목표와 세계의 흐름은 도대체 얼마나 동떨어진 것일까. 다음 주 연재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